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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노트

여름에 읽는, 5편의 영어 동시

하나, 여름에는 바다에 가자

 

At the Sea-Side
                  By Robert Louis Stevenson

When I was down beside the sea
A wooden spade they gave to me
To dig the sandy shore.

My holes were empty like a cup.
In every hole the sea came up
Till it could come no more.

 

해변에서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바다 옆에 있었을 때

그들이 내게 나무 삽을 주었다

모래 해안을 파라고

 

내가 판 구멍들은 컵처럼 비어 있었다.

구멍구멍마다 바다가 올라왔다

더 이상 올 수 없을 때까지

 

아, 그동안 동명이인 줄로만 생각했다. <보물섬>와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과 이 동시를 쓴 시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같은 사람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너무 안 어울리잖아. 그렇지 않나? 바닷가에서 모래를 파내고 구멍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를 그리는 사람이 <보물섬>의 해적과 하이드를 만들어낸 사람이라는 건 매치가 안 되는 거잖아. 더구나 하이드라니 아이들과는 몇 억 광년 거리가 먼 캐릭터니까.

 

이 시에서 spade는 '삽', dig는 '파다', hole은 '구멍, 구덩이', empty는 '(그릇이) 빈, 든 것이 없는'이라는 뜻이다. 

 

 

 

둘, 즐겁게 체리를 따야지

 

Let's Be Merry
                         by Christina Rossetti

Mother shake the cherry-tree,
Susan catch a cherry;
Oh how funny that will be,
Let's be merry!

One for brother, one for sister,
Two for mother more,
Six for father, hot and tired,
Knocking at the door.

 

즐겁게 보내자

                 - 크리스티나 로제티

 

엄마가 체리 나무를 흔들고

수잔이 체리를 잡는다

얼마나 재미있을지

즐겁게 보내자!

 

하나는 남동생에게, 하나는 여동생에게,

두 개는 엄마에게,

화나고 지쳐서 문을 두드릴

아빠에게는 여섯 개를

 

크리스티나 로제티는 19세기 영국의 시인으로, 주로 낭만적인 시, 종교적인 시, 동시를 썼다. 이 시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시인이었고, 외삼촌의 친구는 바이런과 샐리였고, 오빠는 라파엘 전파를 결성한 화가이자 시인인 가브리엘 로제티였으니 그야말로 예술가 집안 출신이다.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몇몇 시를 보면 이렇게 귀여운 시가 있어서 이 시를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해진다. 다른 시인들은 궁금하지 않은 편인데, 이 시인이 차분하게 세상을 그리고 있어서 어떤 삶을 살았을지 알고 싶어 진다.

 

동영상으로 트럭을 몰고가면서 체리를 수확하는 광경을 본 적 있는데, 트럭 위의 기계(?)가 나뭇가지를 잡아당겨서 수확한다. 그에 비해, 이 시에 나온 체리 수확 방법은 진짜 목가적이다. 엄마가 체리 나무를 흔들고 떨어지는 체리를 아이가 잡는 방식이라 완전 수작업이다. 이 작업이 노동이 아니라면 상당히 즐거운 작업이고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을 것 같다. 가족들에게 체리를 줄 생각에 마음이 부푼 아이의 심정을 봐도 그렇다. 

 

이 시에서 merry는 '즐거운, 명랑한', shake는 '(물체를) 흔들다', catch는 '잡다',hot은 '화난, 흥분한', knock은 '(문을) 두드리다'라는 뜻이다.

 

 

 

셋, 여름에는 아이스박스에 자두를

 

This Is Just To Say

                          by William Carlos Williams 

I have eaten
the plums
that were in
the icebox

and which
you were probably
saving
for breakfast

Forgive me
they were delicious
so sweet
and so cold

 

이건 말해둬야 할 것 같아

                -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아이스박스에 넣어둔 자두,
실은 내가 먹었어.

 

당신이 아침에 먹으려고

남겨둔 자두 말이야

용서해줘.

자두가 아주 맛있고

달콤한데다

아주 차가워서

(어쩔 수 없었어)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1883~1963년)는 소아과 의사를 하면서 계속 시를 쓴 미국의 시인으로, 미국 구어를 바탕으로 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시는 귀여우면서도 능청스러워서, 이 시를 받게 된 사람은 화를 낼 수 없을 것 같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여름에 아이스박스에 자두를 넣어둔 사람이 자두는 없고 빈 아이스박스만 봤을 때를 상상해도, 이렇게 귀여운 시로 변명을 하는데 용서해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예전에 아마존에서 이 시가 인쇄된 테이블 타월을 봤는데, 여름 식탁에 올려놓으면 딱일 것 같다. 그야 물론 여름에는 자두지,라고 말이다.

 

이 시에서 plum은 '자두', probably는 '아마', save는  (나중에 쓰거나 하려고) 남겨 두다, 아끼다', delicious는 '아주 맛있는', sweet는 '달콤한'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20세기 초까지 아이스박스는 미국 문화의 일부였다고 한다. 1914년 영국 여행 작가 위니프레드 제임스가 아이스박스 없는 미국인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라고 물을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었다. 아이스박스가 각광을 받은 이유는 여성들이 식품을 저장하기 위해 해야 하는 전통적인 의무의 짐을 덜어줬기 때문이고, 우유와 고기처럼 상하기 쉬운 음식을 맛이 변하지 않게 보관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19세기 말 산업화된 미국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쇼핑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고, 시골에 사는 사람들도 시장까지 이동할 시간이 없었다고 하니, 아이스박스가 여러 모로 활용도가 높았을 것 같다. 야채를 피클로 만드는 것보다 아이스박스에 보관하는 게 시간이 덜 걸리는 한편, 남은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하나 더 미국에서 아이스박스가 개발된 이유에는 19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갑자기 생겨난 큰 얼음 시장 덕분이라고 한다.(Refrigeration Nation: A History of Ice, Appliances, and Enterprise in America에서 간략하게 발췌한 정보)

 

 

 

넷, 여름 밤에는 역시 반딧불이지

 

Fireflies in the Garden 
                                      By Robert Frost 


Here come real stars to fill the upper skies,
And here on earth come emulating flies,
That though they never equal stars in size,
(And they were never really stars at heart)
Achieve at times a very star-like start.
Only, of course, they can't sustain the part.

 

정원의 반딧불이

            - 로버트 프로스트

 

진짜 별들이 저 위쪽 하늘을 채우기 위해 왔고
여기 지구에서는 (별을) 따라 하는 벌레들이 왔다

크기에서는 절대 별과 똑같이 될 수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저 벌레들이 절대 별들이 될 수 없지만)
가끔은 저 아주 별 같은 시작을 이뤄낸다.

물론, 벌레들이 별처럼 빛을 지속할 수는 없을 뿐

로버트 프로스트가 쓴 반딧불이에 대한 시로, 이번에 처음 읽었다. emulate는 '흠모하는 대상을 모방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별을 따라 하는 벌레들이 반딧불이라는 것을 말하면서 별과 반딧불이를 대비하고 있다. 크기를 따지자면 별에 한참 모자라지만, 별처럼 빛을 지속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별처럼 빛을 내기 시작하는 것은 반딧불이라는 것.

 

이 시에서 firefly는 '반딧불이', upper는 '더 위에 있는', equal은 '동일한, 같은', at heart는 '마음속으로는', achieve는 '~을 해내다, 이루다', at times는 '때때로, 가끔은', sustain은 '지속하다, 계속하다'라는 뜻이다. 

 

 

 

 

다섯, 그네 타고 하늘 높이 날아보자

 

The Swing
                            By Robert Louis Stevenson

 

How do you like to go up in a swing,
   Up in the air so blue?
Oh, I do think it the pleasantest thing
   Ever a child can do!

Up in the air and over the wall,
   Till I can see so wide,
Rivers and trees and cattle and all
   Over the countryside—

Till I look down on the garden green,
   Down on the roof so brown—
Up in the air I go flying again,
   Up in the air and down!

 

그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그네를 타고 저 위로 올라가니 어떠니? 
저렇게 푸른 하늘 속으로 높이 
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해! 

하늘 속으로 담 넘어 
아주 넓게 볼 수 있을 때까지
강들, 나무들, 소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시골 지역을 넘어

초록의 정원을 내려다볼 때까지 

아래 갈색 지붕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

하늘 위로 그리고 아래로

 

아이들처럼 그네를 타면 어떨까? 위로 올라갈 때 푸른 하늘이 보이고 담장 너머 강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면 상당히 신날 것 같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갈색 지붕도 보고. 이렇게 하려면 얼마나 높이 날아야 하려나. 이 시 역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시라니 놀랍다.

 

시의 풍경과는 좀 다르지만 사진의 아이처럼 푸른 물 위에서 그네를 타면 어떨까. 직접 그네를 타서 하늘도 날아보고 저 물에도 풍덩 몸을 던져보면 여름을 몸으로 나는 느낌이 날 것 같다. 여름에는 당연 물놀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