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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노트

초코러브 포장지의 셰익스피어 소네트 75

초코러브 초콜릿을 가끔 사먹는데, 포장지 안쪽에 시가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포장지를 펼쳐볼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것 같다. 당연히 안쪽은 그냥 백지일 줄로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 먹고 버리려다 보니 소네트가 실려 있어서 좀 충격이었다. 그동안 한번도 못 보다니, 내가 이리 무심할 줄이야 미처 몰랐다. :)

아니, 굳이 변명을 하자면, 초콜릿을 감싸고 있는 은박지가 너무 금방 부스러져서 밖의 포장지로 감싸기 때문에 볼 겨를이 없었다.

한꺼번에 다 먹지는 않으니까.

 

“In August of 1995, I introduced the world to Chocolove. We began with 4 flavors of premium chocolate and all with declared cocoa content on the front of the wrapper. The wrapper design was inspired by a letter from abroad with a love poem printed inside.” (초코러브 홈페이지에서)

 

포장지 디자인은 사랑의 시가 안에 프린트되어 있던 외국에서 온 편지에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라는 설명을 읽고 나서야 좀 독특한 초코러브 포장지 디자인이 이해된다. 우표와 스탬프가 뭘 의미하나 했더니, 바로 편지였다.

 

좀더 찾아보니, 그때 이후로 350편의 시(와 발췌 부분)를 프린트했다고 한다.

초코러브의 오너가 시가 초코러브 패키지를 완성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선정 기준은 퍼블릭 도메인, 사랑과 로맨스에 관한 시, 포장지 안에 들어갈 분량이다.

 

 

 

초코러브 시

 

 


SONNET 75
So are you to my thoughts as food to life,
Or as sweet-season'd showers are to the ground;
And for the peace of you I hold such strife
As 'twixt a miser and his wealth is found;
Now proud as an enjoyer and anon
Doubting the filching age will steal his treasure,
Now counting best to be with you alone,
Then better'd that the world may see my pleasure;
Sometime all full with feasting on your sight
And by and by clean starved for a look;
Possessing or pursuing no delight,
Save what is had or must from you be took.
Thus do I pine and surfeit day by day,
Or gluttoning on all, or all away.

 

(러프하게 번역하면)

당신은 나에게 이런 존재다.

삶에 대한 음식과 같고, 대지에 대한 봄비와 같다.

당신에 대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구두쇠가 자신의 부에 대해 싸우듯이 나 자신과 싸운다.

한 순간은 자신의 부를 자랑스럽게 즐기다가 다음 순간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둑의 시대가 자신의 보물을 훔칠 것 같아 걱정하는 구두쇠처럼 말이다.

지금은 당신을 나만 알고 숨겨 두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다가 세상이 나의 즐거움을 보게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당신의 모습을 즐겁게 보며 만족스러워하다가 결국에는 절대적으로 당신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길 갈구한다.

당신이 내가 준 것이나 내가 당신에게 얻게 될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즐거움도 가지거나 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이 함께하는 날에는 포식하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굶는다.

 

 

음식과 봄비는 그렇다 쳐도, 사랑 시에 구두쇠를 비유로 쓰다니 대단하다.

역시 셰익스피어답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마냥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아주 집착이 심한 남자의 속내 같다.

셰익스피어 시를 그냥 보고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구글에서 analysis나 modern english를 붙여서 검색하면 현대어로 풀이된 해석이 많이 나오니까 참조하면 된다. 해석별로 의미가 좀 다를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유튜브에도 시를 낭송하는 영상이 많이 있으니 시를 보면서 귀로 들으면 좋은데, 이 소네트 75의 경우, 패트릭 스튜어트 경이 읽어주는 영상이 있다. 영국 배우가 읽어주는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들으려면 여기로.